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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맛 이해하기, 바디감·산미·밸런스 감별법

arisir 2025. 8. 27. 18:57

커피맛 감별을 위해 커핑 노트를 작성하며 바디감과 산미를 비교 시음하는 장면(이미지 생성:google)

커피맛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쓴맛’이나 ‘진하다’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한 잔의 커피 안에 숨어 있는 미묘한 감각의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전문 바리스타나 커피 애호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 바디감, 산미, 밸런스는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찾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 글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맛을 읽는 법’을 배우고, 커핑 노트(Cupping Note)를 통해 미각을 훈련하는 방법까지 자세히 알아보자.

1. 커피맛의 언어 배우기 — 바디감·산미·밸런스의 기본 이해

커피는 수백 가지 향미(Flavor)로 구성된 복합적인 음료다. 하지만 커피맛을 평가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세 가지 요소는 바로 바디감, 산미, 밸런스이다. 이 세 가지는 커피의 구조적 완성도를 결정짓는다.

① 바디감(Body)

바디감은 입안에서 느껴지는 커피의 질감을 의미한다. 우유의 고소함이나 초콜릿의 진득함처럼, 커피에도 점성과 밀도가 존재한다. 입안에 머금었을 때 묵직하거나, 가볍거나, 부드럽거나 거친 느낌으로 구분된다.

  • 라이트 바디: 물처럼 가볍고 산뜻한 질감. 에티오피아, 케냐 등 고산지 원두에서 주로 느껴진다.
  • 미디엄 바디: 부드럽고 균형 잡힌 감촉. 브라질, 콜롬비아 커피에서 자주 나타난다.
  • 풀 바디: 점성이 높고 묵직한 질감. 수마트라, 인도 원두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대표적이다.

바디감은 로스팅 정도추출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강배전일수록 오일이 많이 생성되어 진한 질감을 주고, 에스프레소나 프렌치프레스처럼 미분이 남는 추출 방식일수록 바디감이 강조된다. 반면, 드립커피나 콜드브루는 깔끔하고 가벼운 질감이 두드러진다.

② 산미(Acidity)

커피의 산미는 ‘신맛’이 아니라 ‘밝고 생동감 있는 맛’을 뜻한다. 이것은 원두의 산지, 품종, 가공법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는 시트러스한 산미를, 케냐 AA는 와인 같은 복합적인 산미를 지닌다.

산미는 단맛과 조화를 이루면 상큼하고 과일 같은 풍미를 주지만, 불균형하면 시고 자극적인 맛으로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커피의 산미는 ‘깨끗하면서도 부드럽게 사라지는 신맛’이어야 한다.

산미의 세부 유형:

  • 시트릭(Citric): 레몬, 오렌지 같은 밝은 신맛
  • 말릭(Malic): 사과나 배의 산뜻한 산미
  • 타르틱(Tartaric): 포도주에서 느껴지는 둥근 산미
  • 아세틱(Acetic): 발효감 있는 신맛 (과도하면 식초 같은 느낌)

커피의 산미를 감별하려면, 한 모금 마신 후 혀의 옆부분과 끝부분에서 자극을 느껴보자. 입 안에서 신맛이 폭발하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면 그 커피는 ‘밸런스가 좋은 산미’를 가진 것이다.

③ 밸런스(Balance)

밸런스는 커피의 전체적인 조화를 의미한다. 산미, 단맛, 쓴맛, 바디감이 서로 어울려 하나의 완성된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좋은 밸런스를 가진 커피는 특정 맛이 과하지 않고, 입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깔끔한 마무리를 남긴다.

예를 들어, 산미가 뛰어난 예가체프 원두라도 너무 밝으면 신맛만 남고, 단맛이 적절히 보완되면 향긋한 꽃향기와 함께 우아한 밸런스를 형성한다. 밸런스는 단순한 맛의 평균이 아니라, 하모니의 개념이다.

2. 커핑(Cupping)으로 커피맛 훈련하기 — 커피맛 감별 훈련의 핵심

전문 바리스타와 Q 그레이더(Q-Grader)는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기 위해 ‘커핑(Cupping)’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이는 일정한 방법으로 커피를 추출하고 향과 맛을 분석하는 표준화된 테이스팅 방식이다.

① 커핑 절차

  1. 원두를 중배전 정도로 로스팅한다.
  2. 10g의 원두를 굵게 분쇄해 150ml의 뜨거운 물(약 93℃)을 붓는다.
  3. 4분간 우린 뒤, 윗부분에 생긴 크러스트(커피 찌꺼기층)를 걷어낸다.
  4. 스푼으로 향을 맡고, 약간 식은 상태에서 맛을 본다.

커핑 중에는 다음 항목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 Fragrance / Aroma: 향기
  • Flavor: 전체적인 맛의 인상
  • Aftertaste: 여운과 마무리
  • Acidity: 산미의 질과 강도
  • Body: 질감의 농도
  • Balance: 전체 조화

커핑 노트는 단순한 점수가 아니라 미각의 기록이다. 향미를 표현할 때 ‘초콜릿’, ‘시트러스’, ‘허브’, ‘플로럴’ 같은 구체적 단어를 사용하면 자신의 미각 감각을 더 정교하게 훈련할 수 있다.

② 미각 감별 훈련 팁

  • 한 번에 3가지 원두를 비교 시음하라. 상대적인 차이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 물의 온도, 추출 시간, 분쇄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통제된 조건을 만든다.
  • 커피를 삼키지 말고 입 안 전체로 굴려서 혀의 다양한 부위를 자극하라.
  • 노트를 작성할 때 “신맛 강함”보다는 “레몬 산미, 클린하고 상큼함”처럼 구체적으로 기록하라.

꾸준히 커핑을 하면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는 감각이 생기며, 원두의 품질과 로스팅 스타일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커피맛의 과학적 원리 — 향미가 만들어지는 이유

커피의 맛은 단순히 원두 품종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그 속에는 화학 반응, 가공 방식, 수분 함량, 추출 변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① 화학적 성분과 향미의 관계

커피에는 800가지 이상의 향기 분자가 존재한다. 이 중 대부분은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된다. 마이야르 반응과 카라멜화가 진행되면서 당과 아미노산이 결합해 초콜릿, 견과류, 과일향 등을 형성한다.

또한 로스팅 온도가 높을수록 산미는 줄고 쓴맛이 강해지며, 바디감이 진해진다. 반대로 약배전에서는 복합적인 산미와 향이 두드러진다.

② 물의 성분이 미치는 영향

같은 원두라도 물의 미네랄 함량에 따라 맛이 다르다. 칼슘과 마그네슘이 너무 많으면 쓴맛이 강조되고, 적당한 미네랄은 단맛을 살려준다. 따라서 커핑이나 추출 시에는 ‘정수된 중경수(약 100ppm)’가 이상적이다.

③ 밸런스를 만드는 추출 변수

분쇄도, 물 온도, 추출 시간의 세 요소가 커피맛의 밸런스를 결정한다.

  • 분쇄도가 너무 고우면 과추출되어 쓴맛이 강해지고, 너무 굵으면 산미가 도드라지며 밋밋한 맛이 난다.
  • 물 온도는 90~94℃가 이상적이다. 너무 낮으면 단맛이 부족하고, 너무 높으면 향이 날아가고 쓴맛이 생긴다.
  • 추출 시간은 2분 30초~3분을 권장. 에스프레소는 25~30초가 가장 밸런스가 좋다.

결론 — 커피맛을 이해하는 순간, 커피는 예술이 된다

커피맛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경험의 누적이다.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에도 산미와 단맛, 질감의 미세한 차이가 존재한다. 바디감이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프렌치프레스를, 밸런스가 좋은 커피를 원한다면 핸드드립을 추천한다.

중요한 것은 ‘좋은 맛’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맛’을 찾는 것이다. 오늘부터 커피를 마실 때 한 모금씩 천천히 음미하며, 입 안에서 느껴지는 바디감, 혀끝의 산미, 전체적인 밸런스를 의식해보자. 그때 비로소 커피는 단순한 카페인이 아닌, 감각의 예술로 다가올 것이다.

자료 출처:

  •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SCA) — Coffee Tasting Protocols
  • 대한커피협회(KCA) — 커핑 표준 가이드라인